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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1938년, ECT의 탄생 (Ugo cerletti & Lucio Bini)

Ugo Cerletti, 1877 - 1963

전기경련치료(Electro convulsive therapy, ECT)는 1938년 이탈리아의 정신과 의사 우고 체를레티(Ugo Cerletti, 1877 - 1963)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우울증을 가진 간질 환자가 경련을 하고 난 다음에는 우울증이 다소 호전되어 보인다는 관찰에 따라서 경련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호전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1935년 체를레티는 로마 대학 신경정신과 클리닉의 과장, 교수로 일하면서 슬하의 젊은 의사들과 함께 당시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물리적 치료들(인슐린 혼수 요법, 메트라졸 경련요법)에 대해 연구하였는데, 그 의사들 중에서 루치오 비니(Lucio Bini)는 경련을 일으키기 위한 전기자극을 사람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적절한 전극 부착 위치, 적절한 전류량을 알아내기 위해 개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가, 도살장에서 돼지를 도살하기 전에 전기충격으로 기절시키고 도살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무래도 개 보다는 비교적 인간과 체중이나 덩치가 비슷한 돼지가 좀 더 연구 대상에 더 맞지 않았을까 싶다. 연구진들은 도살장으로 가서 그 과정을 관찰하고 연구를 하여 적절한 경련을 일으키기에, 그리고 전기충격으로 사망하지는 않을 정도의 전류량과 전극 부착 위치(관자놀이)를 결정하였다. 수많은 개와 돼지의 희생 위에 ECT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제는 실제 치료가 효과가 있을지 증명할 수 있기 위한 대상, 사람이 필요했다.

 

돼지에게 ECT를 하는 Ugo Cerletti


1938년 4월 경 로마 경찰이 기차역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밀라노 출신의 기술자 한명을 클리닉으로 데리고 온다. 그는 옷차림이 엉망이며 횡설수설하면서 '텔레파시에 의해서 조정당하고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진단명을 알 수는 없지만, 전형적인 조현병이 아니었을까. 경찰은 그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여서 클리닉으로 보내니 관찰하며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지금의 응급입원 같이 경찰이 그런 조현병으로 보이는 사람을 클리닉에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있어서 데리고 온 건지, 아니면 체를레티 측에서 경찰에 그러한 사람을 보면 데리고 와달라고 요청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다. 어쨌든 체를레티는 전기경련요법을 실제 사람에게 적용해볼 첫 기회를 얻게 되었다.

Cerletti의 첫번째 ECT 기계

 

머리를 면도한 환자를 데리고(경찰이 데리고 온 그 사람) 클리닉 2층의 으슥한 구석 방에 치료진들이 모였다. 조심스레 이루어져야 했는지, 한 명은 방 밖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시 전기경련치료를 처음으로 실험해야 하는 상황인데, 혹시나 환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체를레티가 지게 될 것이고 그 여파는 때문에 자신이 일하는 대학에도 누를 끼치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확신이 있었는지 아니면 조마조마한 마음을 누르고 임했는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셈이니 하지 않았을까. 환자는 그저 멍하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하게 가만히 있었고, 간호사들은 환자의 머리에 전극을 부착하고, 경련할 때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치아에 고무튜브를 물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기계 버튼만 누르면 된다. 비니가 체를레티를 바라보자 체를레티는 고개를 끄덕인다.

 

10분의 1초간 80볼트의 자극을 주었다. 환자의 온몸의 근육이 근육이 일시에 경직했고, 잠깐의 의식 소실이 있으면서 심박수가 증가했다. 이 정도 전기 자극을 주어도 일단 환자가 죽지는 않았지만 경련까지는 이어지지는 않았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다. 한번 더 해봐야 한다. 체를레티는 '90 볼트로 올려봅시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자극을 주고 나니 환자는 꼼짝 않고 있다가 노래를 불렀다. 두 번째 자극에도 경련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패인가? 체를레티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높은 볼트로 해보자고 했다. 그러자 환자가 "이봐요. 처음건 귀찮았는데, 두 번째 건 죽을 뻔했다고요."라고 했다. 멍하게 있거나 횡설수설하던 사람이 정상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들이 들었을까. '아 뭐래는거야 경련이 일어난 건 아니니깐 그냥 계속 해'라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이제 다 되었다, 조금만 더하면 더 좋아지겠다' 생각한 건지 알 수는 없다. 체를레티는 "자 그냥 계속 하지" 하면서 세 번째 전기 충격을 준다. 0.5초 동안 110 볼트의 보냈고, 환자는 전형적인 간대성 대발작 경련을 시작하더니 근육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얼굴이 퍼렇게 변하고 동공반사가 소실되었다. 호흡이 멈췄다가 약 48초 뒤에 숨을 쉬었다. 성공이다. 환자도 죽지 않았다. 경련이 끝나자 환자는 침착하게 미소 지으면서 뭔가 물어봐주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의료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무슨 일이 있었죠?"라고 물으니 환자는 "모르겠어요. 그냥 잠들었었나 봅니다"라고 했다. 첫 전기경련치료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꼭 성공적이라고는 볼 수는 없었다. 환자가 1개월 뒤에는 '건강한 상태와 정신'으로 퇴원했고 약 1년간 직장에서도 잘 생활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자 3개월만에 다시 망상과 환청이 나타났다. 전기경련치료는 확실한 치료효과를 보장하지만 그 효과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수용소에서 제대로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아니면 인슐린을 맞고 저혈당에 빠져서 생사를 오가다 경련을 하는 것보다는, 메트라졸을 먹고 말짱히 깬 상태에서 경련이 일어날 때까지의 그 공포스러운 시간을 견디는 것보다는(대략 15~20분이 걸렸다고 한다) 훨씬 덜 불편하고 빠른 치료효과를 보장하는 치료법이었다. 치료법을 갈망하던 수용소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한줄기 빛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전기경련치료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로 뻗어나가서 정신질환 치료의 주류가 되는 듯했으나, 그 앞에는 여러 가지 걸림돌이 많았다. ECT가 생겨날 1930-1940년대는 정신질환의 신경생물학적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분석이 정신의학의 주류로 부상하면서 정신분석학적 이론에 맞지 않는 치료는 다소 배격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리고 전기충격, 경련 이런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전기경련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만한 치료가 없기 때문에 널리 사용되기도 하였다. 사생활 스캔들이 많은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잘만 뛰면 대중들이 스캔들을 별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반정신의학 운동이 일어나고, 그동안 발명된 클로로프로마진, 이미프라민 같은 정신약물들이 정신과질환 치료의 주류를 차지하면서, ECT는 정말 정말 치료하다가 도저히 안될 거 같으면 사용하는 금단의 치료법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럼 지금은 아예 ECT를 쓰지 않느냐. 그런건 아니다. 우울증, 조현병, 조울증 등에서 아직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약의 부작용이 심하거나 임신을 했다거나 하는 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거나, 증상이 너무 심해서 빨리 호전시킬 필요가 있거나, 망상이나 긴장증이 심하여 음식이나 물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 그런 상황에는 꼭 필요한 치료법이다. 머리에 전극 붙이고 바로 전기 충격을 주는 그런 전기경련요법(소위 Hard ECT라고 한다)은 더 이상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마취제로 재우고, 근육경련이 전신에 다 일어나지 않기 위해 근육이완제도 쓰면서 전기경련치료를 받았는지 경련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아주 부드럽게 시행한다(Hard ECT와 비교하여 Soft ECT라고 부른다. 정식 명칭은 Modifiec ECT). 이제는 ECT 외에도 rTMS(Repetitive transcranical mgnetic stimulation, 경두개자기자극술), tDCS(Transcranial direct-current stimulation, 경두개직류자극술) tACS(Transcranical altenating current stimulation, 경두개교류자극술) 같이 간단한 형태의 뇌 자극 치료법이 있다.

MECTA spECTrum 5000Q in a modern ECT Suite


ECT가 생긴지 약 80년이 지났다. 한 50년이 지나면 지금의 치료가 구식으로 느껴질 정도의 획기적인 치료방법이 개발될까? 그때를 볼 수는 있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