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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는 한번 약을 먹으면 계속해서 먹어야 할까?

Crazy by Gan Khoon Lay from NounProject.com

조현병은 환청, 망상, 기이한 행동 및 사고, 음성증상(의욕, 사회성, 자기관리 등의 영역 기능 저하) 등이 주 증상인 정신질환이다. 전 인구의 1%가 앓고 있는 이 질환의 발생은 현재로서는 생물학적인 요인(유전, 뇌 신경계 구조 문제)이 심리적 요인보다는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조현병의 치료는 무엇보다 약물치료, 항정신병약제로 불리는 antipsychotics의 사용이 필수적이다. 재발할 경우 뇌 기능의 저하(해부학적이기 보다는 기능적), 실제적 삶의 어려움(사회적, 직업적, 대인관계적)이 생겨 삶을 이어가는데 있어 심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약물치료로 증상이 사라지거나 완화되더라도 되도록이면 약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조현병 약물치료의 정석이다.

조현병의 약물치료는 급성기 이후 유지치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초발 조현병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 중의 하나는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나요?”이다. 재발이 잦았던 분들이라면 더 이상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약물을 유지하자고 권유하지만, 초발의 경우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고민된다. 일반적으로는 재발을 막기 위해서 적어도 1-2년 간은 약물치료 유지를 권고하겠지만, 그 시기가 넘어선다면? “Do no harm” 의 원칙에 따라서 환자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약물치료를 유지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 일견 옳아 보인다. 하지만 약을 장기간 유지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들(체중 증가를 비롯한 대사 문제 등)을 생각해보면 유지치료의 손실과 이득(Risk & benefit)을 잘 저울질 하여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 일선 임상에서는 어떠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증상이 경미했거나, 전반적인 기능(사회적, 직업적)이 좋을 때 등이 아니라면 약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경미하거나 기능이 좋더라도 유지하는 경우도 상당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조현병 치료 가이드라인도 대부분 재발이 없다는 전제하에 적어도 1-5년은 약물치료를 유지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 연구들도 조현병에서 약물치료가 중단될 경우 재발의 위험성이 5년 내 4.9배 높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연구에서는 1-2년간 약물치료 받으며 안정적으로 지내던 조현병 환자들도 약을 끊게 되면 57-98%는 악화되거나 재발한다고 말한다.



https://pubmed.ncbi.nlm.nih.gov/29621900/

20-Year Nationwide Follow-Up Study on Discontinuation of Antipsychotic Treatment in First-Episode Schizophrenia - PubMed

Whatever the underlying mechanisms, these results provide evidence that, contrary to general belief, the risk of treatment failure or relapse after discontinuation of antipsychotic use does not decrease as a function of time during the first 8 years of ill

pubmed.ncbi.nlm.nih.gov


하지만 2018년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에 실린 조현병 초발 시 항정신병 약물치료의 중단에 대한 20년 추적 연구(20-year Nationwide follow-up study on discontinuation of antipsychotic treatment in first-episode schizophrenia)의 결과는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다소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약물치료를 유지한 사람들 보다 중단한 사람들의 치료 실패 위험이 높았다. 하지만 약물치료 중단을 나중에 할 수록 치료 실패 위험(재입원 및 사망)이 높았다.
2. 약물치료를 유지한 사람들이 중단한 사람들 보다 사망위험이 낮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약물치료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서 재발이 낮을 것이고, 약물치료를 중단하더라도 어느 정도 약을 오래 쓰고 난 다음에 끊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를 보면, 일찍 끊는 사람들 보다 나중에 끊는 사람들이 오히려 재발 및 사망의 위험이 높았다고 한다. 요것만 보자면 약물 유지치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1. 약물치료를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은 약물 중단 후 재발 위험이 높으니 오히려 계속 유지하여야 한다.
2. 약을 중단하려면 차라리 초반에 중단하는 것이 재발 위험이 적다?


두번째 문장 내용은 일괄적으로 환자들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어떤 요인들과 특성들이 약물치료 중단 후 재발을 막아주는지 명확하지 않고 재발의 위험성을 감수하고 약을 중단하는 것이 환자나 의사에게는 큰 모험이며 특히 환자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첫번째 연구결과를 봐도오랫동안 약물치료를 해서 안정적으로 지내왔다고 해서, 증상이 경미하다고 해서, 병전이나 현재 기능이 좋다고 해서 약을 끊어도 된다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가지고 섣불리 약을 중단해도 된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시도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걱정이 된다.


약을 유지하되 중단하기 위해서는 충분하 시간과 계획이 필요

Taking Medicine by Gan Khoon Lay from NounProject.com


그래서, 초발 조현병 환자가 약물치료로 충분히 호전되었으면 약을 중단해도 되느냐 안되느냐에 대답은? “되도록 유지하되 중단하게 된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대비를 하자” 라는 아주 애매한 대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대부분의 초발 조현병 환자들에게는 치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 더 큰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 환자의 다른 신체질환, 임신 및 수유, 약물을 중단하고 지내고자 하는 환자 본인의 강력한 의사 등 고려할 사항들이 많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약을 유지해야 할지, 감량해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는 진료 현장에서 한번쯤은 고민하게 될 수 밖에 없다.